아빠..
살아계실 땐 단 한번도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른 기억이 없어요. 늘 아버지는 저에게 크고 조금은 먼 존재였기에 편하게 '아빠'라고 부르지를 못하고 늘 '아버지'라고 불렀던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아버지 들어오시면 앉아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편하게 앉아 있지도 못하고 늘 좌불안석이었는데, 그게 지금도 후회가 되고 가슴이 아픕니다. 언니들과 터울많은 막내동이가 드라마에서처럼 아버지한테 아양도 부리고 애교도 떨고 그랬어야 하는데, 마지막까지 무뚝뚝하게 굴었던 점이 정말 후회가 됩니다. 젊어서는 큰소리도 치시고 하셨지만, 자식들에게 매 한번 드시지도 않았고, 싫은 소리 한번 안하셨는데도 왜 그렇게 했는지.... 가까운 사람들에겐 오히려 더 퉁명스럽게 대하는 우리 집안 사람들의 기질은 어쩔 수가 없나봐요.
나이가 들어서 결혼을 하고 보니 이제서야 겨우 엄마, 아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고 했는데, 제가 결혼하기를 기다리신 것처럼 이렇게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나니, 언제나 아버지의 부재를 실감하게 될른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돌아오는 구정 때 세배 드릴때 혼자 앉아 계시는 엄마를 보면 그때야 실감이 날지도 모르겠네요. 마지막에 제 걱정을 하셨다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들 10월 쯤엔 입주할 거고, 아버지가 자랑스러워 하신 것처럼 잘 살아갈 겁니다.
한달전부터 몸시 앓으셔서 늘 미간에 주름이 가득하셨는데, 마지막으로 누워 계신 아버지의 얼굴은 편안하신 것 같아서 마지막 위안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아버지의 가시는 길을 지키지 못한 것은 천한으로 남을 것 같아요. 연수가 뭐라고 끝까지 그걸 듣고 가겠다고 버텼는지... 저는 마지막까지도 제 욕심만 챙기기에 급한 이기적인 딸입니다. 자식들 모이기 편한 날 가겠다고 하신 아버지 말씀을 뒤늦게 듣고 가슴만 칠 수 밖에 없었어요. 늘 우리 막내가 비행기 태워서 해외여행 시켜줄 거라고 흐뭇해 하셨는데... 결국 그 말씀도 따르지를 못했습니다. 엄마만 보내 드려도 속상해 하지 않으실 거죠?
아빠. 오늘 막 엄마가 부산에 올라오셨어요. 형부랑 언니가 어제 거제도 가서 오늘 모시고 올라왔어요. 구정때까지 계시겠다는 걸 고집부려서 모시고 올라왔는데, 아무래도 엄마는 거제도를 떠나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저희들 입장에선 혼자 남아 아버지 생각에 힘들어할 엄마를 생각하면 그대로 계시게 할 수가 없어서요. 이번주에 오빠네도 내려온다고 하니 주말에 아버지 찾아 뵐 거예요.
산 사람은 그래도 살아간다고, 아버지 가신 다음에도 우리들은 밥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일도 하고 살아갑니다. 아버지와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한 엄마가 걱정이예요. 울지 않을거라고 그렇게 다짐하셨는데, 그날 정말 한스럽게 우셨어요. 지켜 보셨죠? 오빠 걱정할까봐 울지도 않으려고 애쓰신 엄마를 보니, 마지막까지도 부모의 심정은 헤아리기가 힘들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통증에, 새벽녘에 한숨도 못 주무시고 "밤은 왜 이리 기냐"하시며 베개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신 아버지의 모습... 이젠 그런 모습보다 밑의 사진속에서처럼 웃고 계신 아버지의 모습만 기억할 겁니다.
이젠 고통없는 곳에서 편안하실 거라는 믿음이 아버지의 부재를 한탄하지 않도록 지켜 주리라 믿습니다. 마지막까지도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자식의 부족함도 아버지는 감싸안아 주실 거죠?
늘 지켜봐 주시고, 잘못된 길로 갈 땐 질책해 주세요. 꿈에서나마 만나뵈면 '아빠'하고 큰 소리로 웃으며 불러드리고 싶습니다.
편히 잠드세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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