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 죽음 그 이후의 이야기
[세상속으로] 죽음 그 이후의 이야기
'90분(화장에 걸리는 시간)' 세상에서 삶의 흔적을 지우는 시간
망자를 화로에 넣기 위해 운구대를 밀고 가는 취재기자.
생의 흔적이 지워지는 순간이다.
시신에 화장을 하는 메이크업 박스(작은 사진).
사진=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90분'.
불구덩이 화로에 들어간 시신이 '한줌' 재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동시에 극에 달한 슬픔이 해체되고 유족이 망자와의 이별을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치유의 시간이다.
떠난 자와 남겨진 자. 그 사이에 공유할 수 없는 공간, 장례식장.
부산 영락공원에서 체험한 죽음 그 이후의 짧은 이야기.
# 살아도 죽어도 가족
연두색 가운, 마스크와 수술용 장갑을 끼니 외과의사가 된 기분이다.
죽은 사람을 보거나 만지는 건 이번이 처음.
나도 모르게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긴장하면 나오는 버릇이다.
안치실. 부패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 시신은 영상 4도로 냉장보관한다.
아랫칸에서 병원 침대보에 싸인 할머니 시신 한 구를 꺼냈다.
문을 열자 퀴퀴한 냄새와 함께 서늘함이 얼굴에 와 닿는다.
염습(殮襲·죽은 사람의 몸을 닦고 수의를 입히는 일)을 위해
바로 옆 입관실로 망자를 옮겼다.
3평 크기의 입관실. 싱크대와 찬장이 딸려 단출한 주방을 연상시킨다.
기자와 염습을 함께 할 장례지도사 박중서 이승희 씨.
둘 다 스물여덟의 파릇한 선남선녀다.
'궂은 일' 하기에는 앳돼 보여도 4, 5년차 베테랑들이다.
침대보를 걷어내자 환자복을 입은 망자의 주검이 드러났다.
오랜 병치레 탓인지 누렇게 뜬 피부에 나무토막처럼 뼈만 앙상하다.
축 늘어진 팔, 사후경직 때문인지 양쪽 다리는 'V'자로 굽어져 펴지질 않았다.
사망한지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왕자 싯다르타가 궁 밖에서 봤던 생로병사가 이런 모습이었을까.
시신 한 구를 염습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1시간.
유족들이 들어 오기 전에 '궂은' 일을 마쳐야 일이 수월해진다.
박 씨가 망자의 굽은 다리를 반쯤 펴다 그만 포기했다.
무리해 힘을 주면 자칫 뼈가 부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옷을 벗기려고 이리저리 몸을 눕히다가 그만 망자의 실눈과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헉…'.
준비를 끝내자 유리벽 밖 참관실로 상복을 반쯤 걸친 유족들이 들어왔다
(염습과 입관이 끝나야 유족은 상복을 입고 조문객을 받을 수 있다).
망자에게 90도 인사를 하고 유족들이 보는 가운데 본격 염습에 들어갔다.
알코올에 솜을 묻혀 몸 구석구석을 정성껏 닦아 내려 갔다. 간간이 들리는
유족의 흐느낌 외엔 정적이 흐른다.
감염 위험 때문에 염습은 극도의 주의가 요구된다.
결핵균 등은 '숙주'가 사망하면 생존을 위해 시신 밖으로 빠져 나온다.
따라서 마스크와 장갑 착용은 필수.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두 사람은 망자를 맨손으로 닦고 주무르고 있었다.
더 정성스럽게 '시술'하기 위한 아슬아슬한 자기희생이다.
장례지도사들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경우는 사고사를 당했거나
심하게 부패한 시신을 대할 때다.
특히 익사자는 몸이 평소의 배 가까이 불어나 수고도 배 이상 든다.
망자의 몸을 모두 닦고 분홍빛 수의를 입혔다. 고인의 모습이 갈수록 화사해져 간다.
유족들의 흐느낌도 잦아들 쯤 이 씨가 찬장에서 뭔가를 꺼냈다.
시신 화장을 위한 메이크업 박스다.
스프레이를 뿌려 머리를 뒤로 넘기고 얼굴에 로션을 발랐다.
상큼한 로션향이 마스크 너머로 살짝 파고 들었다.
눈화장 볼터치 입술화장 등을 마치니 종전의 시신은 간데없고
근사한 할머니 한 분이 말없이 누워 있다.
숨죽이며 지켜보던 유족들의 표정에도 안도감이 깃든다.
얼굴에 복건을 씌우고 염포로 망자의 몸을 동여맸다.
"이제 입관 하겠다"는 장례지도사의 짧은 말.
또 다시 유리벽을 두드리며 오열하는 유족들.
내내 담담함을 지키던 50대 맏아들도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망자는 살았으나 죽었으나 유족에겐 소중한 가족일 뿐이다.
# '레테의 강'을 건너다
기차역 대합실만큼 어수선한 화장장 대기실.
발을 동동 구르며 울부짖는 유족을 뒤로 하고 발인을 끝낸
망자가 화장장 안으로 건네졌다(장례지도사는 화장 업무는 맡지 않는다).
15기의 화로가 길게 늘어선 화장장은 장중하면서도 엄숙하다.
화로 안으로 공기를 불어 넣는 송풍기의 악다구니 소리가 귓전에 '웅웅'거렸다.
운구대를 밀어 화로 앞에 멈춰 세웠다. 묵직한 무게감이 전해진다.
마치 세상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망자의 몸부림 같다.
조그만 엘리베이터를 닮은 화로 문이 열리고 관을 밀어 넣었다.
입구에 매달린 CCTV가 바깥 유족들에게 전 과정을 실황중계하고 있다.
화로의 '아가리'가 닫히고 곧 빨간 불이 점등됐다. '화장중'.
화로 내부 온도는 섭씨 1300도. 영락공원에서 하루 화장되는 시신은 50여구 이상.
3명의 수골 직원이 온종일 매달려 작업한다.
만 5년째 화장장에서 근무하는 어느 수골 담당원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항상 마음이 무겁고 우울하다"고 나지막히 말했다.
침묵을 깨고 화로 문이 열렸다. 한 평이 채 안되는 좁은 화로 안.
내화벽돌 위에 수북이 쌓인 잿빛의 유해.
고열과 높은 압력으로 관 속 망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색즉시공, 불가의 단어가 머리속에서 맴돈다.
마스크를 낀 채 작업도구를 들고 수골에 들어간다.
문화재 발굴하듯 조심스레 솔로 털어가며 유해를 쓸어 담았다.
'사각사각' 유해에서 마른 숯 소리가 났다. 조금 섬뜩하다.
유해는 '한줌'보다 훨씬 많은 서너 움큼 이상이다.
같은 체격이라도 여자보다 남자가, 젊고 건강할수록 양이 많다고 한다.
수골 도구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커다란 영구자석이다.
(수술 등으로) 망자의 몸 속에 있을지 모를 쇠붙이를 골라내기 위한 것이다.
더러 이런 풍경을 보고 "유골에서 금붙이를 찾느냐"며
강하게 항의하는 유족들이 있다고 한다. 순전히 오해다.
# '망자의 가디언' 장례지도사
염습을 위해 시신을 안치실 냉장고에서 꺼내고 있다.
기자와 함께 염을 했던 이승희 씨는
"아무렇게나 방치된 시신을 대할 때 제일 화가 난다"고 했다.
망자의 몸 상태와 얼굴에서 생전 그가 겪었을 삶의 고통이 고스란히 읽히기 때문이다.
영락공원의 장례지도사는 모두 9명. 24세부터 36세까지 다들 젊은 편이다.
대부분 타지 출신. 당찬 여성 장례지도사가 3명이나 된다.
하나같이 사회적 금기와 터부에 맞서 이 일을 선택했다.
장례지도사들이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나무토막처럼 실려온 시신이
그들의 손을 거치면서 안온한 모습으로 거듭날 때이다.
영락공원의 최고참 장례지도사 김준형(36) 씨는 대학 1학년 때 가졌던
첫 염습 참관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참관 연락을 오후 9시쯤 받았는데, 그 때부터 아침까지 잠 한숨 못자고 벌벌 떨었어요.
그런데 막상 염을 끝내고 나니 그렇게 마음이 평안해질 수 없더군요."
'유족과 싸우지 말 것'. 유족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장례지도사의 철칙이다.
극도로 민감해진 유족에겐 합리적인 설명이 통할리 없어 아무리 억울해도
수긍해야 하는 게 이들의 덕목이다.
'1조, 고객은 항상 옳다. 2조, 고객이 틀렸다고 생각되면 1조를 다시 생각하라'는
미국 소매점 업계의 전설 '스튜 레오나드사'의 경영지침이 사무실 벽에 표구돼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영락공원 맞은편 공원묘지.
설 때 성묘객들이 놓고 간 조화로 온 산은 때 아닌 꽃밭이 꾸며져 있다.
장례지도사의 업무 가운데 하나가 심야 공동묘지 순찰.
이승희 장례지도사에게 물었다. "밤에 귀신 만날까 무섭지 않아요?"
그녀의 대답. "사람이 더 무서워요."
# 장례에 얽힌 이야기
- 부친상 "아이고"…모친상 "애고"
- 상갓집 곡소리 그때그때 달라요
▲ 부·모에 따라 다른 곡소리=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이고', 어머니·할머니 상을 당하면 '애고(哀孤)'로 우는 게 맞다.
아이고(我以孤)는 울음 소리인 동시에 '홀로된 자식'이라는 뜻의 한자어.
따라서 곡소리는 직계 상주만이 낼 수 있다. 손아랫 사람의 초상인 경우 곡은 하지 않는다.
▲ 3일장은 잘못된 풍습=3일이 장삿날로 정착된 것은 1973년 제정된 가정의례준칙 때문.
이전에는 5일 7일 9일 등이 일반적이었다.
자정 직전에 운명하면 3일장의 경우 실제 조문 가능한 날자가
그 다음날 하루뿐이어서 불합리하다. 이럴 때는 날짜를 늘려 잡는 것이 옳다.
▲ 장례식장의 꼴불견= 복장은 굳이 검은 색 계통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밝은 색은 피하고 엄숙하면서 점잖은 계통이면 무난.
조문객들 사이에 술판이 벌어져 술잔을 부딪치거나 건배를 외치는 것은
망인과 유족에게 큰 결례다. 상주와 맞절을 한 후 다시 악수를 청하는 것도 맞지 않다.
망인의 사인이나 운명한 시각 등을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금지 사항이다.
■ 장례지도사란 = 장의사의 현대적인 용어이다.
상담부터 시신 안치, 염습, 발인까지 장례 전반을 관장하는 전문직이다.
1999년 서울보건대학교에서 장례지도과가 처음 생기면서 전문적으로 양성되고 있다.
국내 장례지도 관련 학과는 서울보건대 외에 동국대 명지대 대전보건대 창원전문대
동부산대학 등 6곳이다.
도움말=동부산대 장례풍수과 전웅남 교수
김성한 기자 honey@kookje.co.kr [2007/03/15 19:30]
붙임. 2007. 3. 13. 국제신문 PDP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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