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묘·추모문화, 이제는 바꿀 때다.
추석 명절이다. 모진 태풍을 이기며 추수한 곡식으로 조상께 제사를 올리고 아이들은 햇과일
입맛에 푹 빠지는 계절이다. 그런데 올해에도 벌초와 성묘행렬로 인한 교통혼잡은 예나 다름
없고, 금수강산이 묘지강산으로 변해가는 아쉬움도 여전하다.
이런 가운데 반가운 소식은 대형 공원묘지인 경기도 고양시 용미리공원과 수원의 연화장,
부산의 영락공원에서 9월30일과 10월1일 추모음악회와 문화행사가 열렸다는 것이다. 행사
내용도 시 낭독에 교향악단과 합창단, 가수가 함께 가곡을 연주하고 합창과 독창에 판소리
까지 곁들였다고 한다. 시민들에게 공원묘지가 혐오시설이 아니고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하는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바람직한 행사다.
이런 행사로는 네덜란드의 베스테르벨트 공동묘지에서 매년 6월에 열리는 콘서트 축제가 있다.
2004년 행사 때는 왕실의 이레네 공주도 참석했는데, 올해는 6월11일에 있었다. 수천명이
참석한 올해 행사 프로그램은 로렌스 반 루벤이 자신이 만든 곡과 편곡한 작품들을 직접 연주했다.
왕립합창단(Mastreechter Staar)이 구노, 베르디의 작품을 불렀고 마지막 곡은 루벤이 합창단과
함께 베라 린이 불러 유명해진 ‘우리 다시 만나요’를 불러 참석한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내년 6월10일 같은 장소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러한 문화행사와 지금의 추모문화를 보면 어떠한가. 우리나라 장사제도의 특징은 매장을
하고 봉분을 만드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묘지의 국토 잠식을 막기 위해 화장서약운동이 성과를
올리고 있으나 매장 선호 관습은 여전하다. 사람이 살다가 죽는 것은 천리(天理)인데도 우리
고장에 추모시설 설치는 결사 반대한다는 의식도 여전하다. 그 결과 전국 230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화장장이 있는 곳은 47개뿐이다. 인구 1000만명이 넘는 서울시도 이웃 고양시와 성남시에
있는 화장장을 이용하고 있는데, 그 용량이 초과하여 화장대란이 닥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어느 화장장에서는 화장을 제때에 하지 못해 장례식을 연기하는 사례도 빈번하다고 한다.
더 안타까운 것은 추모 시설 설치를 막는 이유 가운데는 현행 법제도와 정부 기관의 의식도
한몫 한다는 사실이다. 지난 2000년 ‘매장 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이 ‘장사 등에 관한
법률’로 개정됐지만 변한 것은 별로 없다. 지난해 전국의 화장률이 52.6%로 매장률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신 화장시설이나 납골, 장례시설은 보건위생상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도시계획 시설의 결정·설치 기준에 관한 규칙’ 제7장에서 도축장이 포함된 보건위생시설로
분류해 놓고 설치 지역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그리고 주민들은 이를 지역 내 설치 반대의
구실로 이용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공설 화장장과 사설 화장장 제도를 병행하고 있으나
공설 화장장 설치가 어려운데도 사설 화장장 설치 신고를 하면 주민 반대를 구실로 신고를
반려하고 결국 소송사태로 이어지기도 한다. 공설도 사설도 못한다는 말이다.
이제 우리의 추모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대규모 공원묘지를 재정비하여 시민이 찾는 공원
으로 가꾸자. 그러기 위해서는 종전의 봉분방식을 평장(平葬) 식으로 하고 잔디밭에 묻는
소규모 납골장이나 수목장, 조각장(彫刻葬·조각 작품 안에 안치) 제도를 적극 도입하여 친
근한 문화공원의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행사를 집에서 지내는 제사와 함께
공원에서 가족단위로 하도록 권장한다. 전통적인 관습과 경제적인 이해에 얽힌 추모 문화를
대표적 님비(NIMBY)현상을 해결하는 모범이 되도록 이번 추석에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는 뜻이다.
[[전기성 / 한양대 행정자치대학원 겸임교수, 서울시 입법고문]]
기사 게재 일자 2006/10/04
붙임 관련기사 PDP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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