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자녀와 아내를 미국으로 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 박모(43)씨는 이번 추석에 온가족이
함께 '사이버 차례'를 지내기로 했다. 미국에 있는 자녀들은 인터넷 메신저로 전해오는 박씨의
진행에 맞춰 화상채팅용 카메라를 통해 모니터에 비친 차례상을 향해 절을 올릴 예정이다.
차례상 차림은 30만원을 주고 대행업체에 맡기기로 했다. 혼자 사는 박씨가 일일이 제수음식을
장만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닌 데다 친지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결혼 3년차인 강모(32)씨는 모처럼 직장에서 얻은 1주일간의 꿀 같은 추석연휴 동안 아내와
함께 호주로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선산에 있는 조상묘를 벌초해야 하는 '숙제'는 벌초대행업체에 전화 한 통하는 것으로 간단
하게 해결했다. 대신 강씨는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조상님 묘소 사진을 올려놓고 '내년
설날 때는 꼭 찾아뵙겠다'는 글을 남기는 것으로 죄송한 마음을 갈음하기로 했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 풍경이 변하고 있다. '민족 대이동'이라는 홍역을 치르고 제수음식
장만과 손님맞이로 파김치가 되면서도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가족과 친지가 한자리에 모인다는
의미만으로도 매번 고향을 찾아가던 발걸음이 잦아들고 있다.
직접 고향이나 묘소를 찾지 않고도 전화 한 통,클릭 한 번으로 차례상 차리기에서부터 벌초
까지 대행해주는 업체들이 생겨나면서 가능해진 신풍속도다.
부산지역의 한 차례상 대행업체 관계자는 "문의전화가 하루 150여통 이상 오고 있지만 추석
전날과 당일 모든 주문을 처리해야 하는 일의 특성상 예정된 400세트 이상의 주문은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집 안에서 인터넷 클릭으로 차례와 성묘를 지낼 수 있는 사이버 차례도 등장했다.
명절 때 묘소를 찾지 못하는 후손들을 위해 납골당의 사진을 찍어 인터넷으로 보내주거나
사이버상에 조문실을 개설하는 것. 올초 부산 영락공원이 홈페이지에 개설한 '사이버 추모의 집'
에는 벌써 1천120여개에 이르는 추모의 방이 개설됐고 이번 추석기간 3천~4천명이 다녀갈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젊은층들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추석 신풍속도를 바라보는 기성
세대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이모(65)씨는 "일부 젊은 세대들이 전통의식을 거추장스러운 것으로만 생각하고 무조건 편한
것만 찾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박태우·김백상기자 k103@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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